'베트남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8.02 도미노 이론 (1)
  2. 2012.07.18 떠꺼머리 총각들
  3. 2012.07.04 이것은 영화해설은 아니지만
Director's Comment2012.08.02 21:39



영화에 등장하는 것처럼, 1960년대말 주월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장군이 베트남에 주둔하고 있던 한국군 장병에게 보낸 메세지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만약 우리들이 월남에서 공산 침략자를 막지 못한다면 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동남아 전체를 상실하게 될 것이며

또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에도 커다란 위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월남의 자유와 평화회복은 곧 우리나라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사명이 중차대함을 다시 한 번 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릇 가진 자만이 잃어버릴수 있는 법이다. 해외 식민지를 가져본 적이 없는 한국의 장군이 동남아 전체를 상실할 것에 대한 걱정을 말하는 부분은 매우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미국이 베트남전을 시작한 논거인 도미노 이론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채명신 장군은 영화에서 대본을 낭독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누구를 말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만 한다. 그리고 월남의 자유와 평화회복이 실제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도 역시 생각해 봐야만 한다.

그것은 이 당시 한국군이 자랑하던 <우방군과의 전과 비교>를 통해 알수 있다. 그에 따르면 60년대 말 당시 전투에서 한국군 1명 사망당 베트콩은 10.5명이 사망했는데 미군의 경우 1명당 베트콩 사망자는 5.6명, 월남정부군의 경우는 1명당 베트콩 사망자가 2.8명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군 1명의 목숨이 베트콩 10.5명의 목숨과 같은 값어치를 갖게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한국군의 목숨이 더 비싸게 팔리고 있다는 것인가. 전투 사망자의 이러한 비교는 마치 외환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한국군의 이런 '월등한 전술'과 전과로 인해 미군은 한국군에 교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뉴스위크는 이를 보도하면서 한국전쟁때 미군으로부터 배운 한국군이 월남전에서는 미군을 가르치고 있으며 선생님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훗날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전두환 대령이 광주에서 저지른 일을 생각해보면 전쟁과 학살에 있어서만큼은 도미노 이론이 타당성을 갖고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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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국의 바람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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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보고갑니다~

    2018.08.11 17: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Director's Comment2012.07.18 00:38





1958년 1월 서부전선이라는데 휴전한지 5년도 안된 때에 그것도 휴전선 바로 코 앞 임진강 사이에서 벌어졌던, 모의 원자탄 훈련을 포함한 군사훈련을 구경하고 있는 떠꺼머리 총각들의 모습이다. 미국의 전투기들은 십자 모양으로 날기도 하는 등 에어쇼를 펼치고 강변 모래사장에 놓인 탱크 모형을 향해 네이팜탄을 떨어뜨려 불바다를 만들기도 한다. 한국전쟁 당시 강원, 충북, 경북 지역에는 3만2000톤이 넘는 네이팜탄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이 네이팜탄은 다시 베트남전 때 수도 없이 뿌려져 정글과 마을과 사람을 태우기도 했다.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325


http://www.ccd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9343


누군가는 북한군의 이미지로는 탱크를 떠올리게 되고 미군의 이미지는 비행기를 떠올린다는데 이런 장면을 보더라도 상당히 타당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전쟁터였던 나라의 사람들이 그 불벼락 아래 있었던 기억을 잊어버린 것처럼 스펙타클을 구경하기 위해 강 건너 언덕을 꼭대기까지 빽빽하게 메우고 넋을 잃은채 구경하고 있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은빛으로 빛나며 하늘을 가르는 미국의 비행기가 얼마나 멋있었을까. 혹은 폭탄이 떨어져 불기둥과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얼마나 근사했을까. 이 광경을 보던 사람중 이로부터 6년후 베트남으로 파병된 총각도 있었을까 나는 궁금해진다. 만약 있었다면 그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했으며 과연 무사히 살아 돌아올 수 있었을까. 이런 것이 바로 개인의 운명을 좌우하는 세계질서 아니겠는가. 만약 지옥을 봤다면 지옥을 닮아갈수 밖에 없다.


그 훈련에는 주한미군과 한국군 외에 주한 유엔군으로 주둔하고 있었던 터키(토이기)군도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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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국의 바람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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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s Comment2012.07.04 22:30


한국전 당시 미국 특파원 케이스 비치는 “지금은 한국인으로 태어날 때가 아니다. 양키들이 한국인들을 눈에 띄는 대로 쏘아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온전한 건물을 남기지 않는 B-29의 융단폭격이 빈번했고 전 인구의 1/10이 사망했다고 알려진 한국전쟁에서 전쟁은 한국정부가 기획한 9.28 서울수복 기념행사처럼 적군과 미군이 지휘하는 아군 사이의 전투와 점령으로 기념될 뿐이다. 심지어 기념식에서조차 진정한 주인은 마치 미군인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한국전쟁 중 대량학살과 폭격 속에 살아남은 사람의 경험과 기억은 폭력과 법으로 봉인되었다. 일부만이 정권을 위해 이용되고 버림받았을 뿐. 이 일의 시작은 미군정 치하 40년대 후반의 제주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수만 명의 조선인들이 즉사하거나 피폭당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창세기에는 빛이 있으라 라는 말로 천지창조가 시작되는데 현대 한국사회도 어쩌면 원자폭탄의 섬광과 더불어 시작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것은 결코 에덴동산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세계질서를 일종의 먹이사슬 피라미드처럼 생각해 본다면 맨 밑바닥은 한국전과 같은 전쟁터가 놓여있다. 그 곳에서 하나 올라선다면 그 단계는 경제성장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마치 한국전이 전후 일본 경제부흥에 결정적 밑거름이 되었던 것처럼 밑바닥에서 한 단계 올라선 한국은 베트남전을 통해 경제부흥의 밑거름을 마련하기도 했다.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은 미군이 한국전쟁에서 했던 일을 수행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베트남에서 행했던 일을 본국으로 돌아와 80년 광주에서 재연했다는 것이다. 레이건은 한국 국회에서의 연설에서 적국 소련의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KAL기 사망자를 애도하지만 광주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는다.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한국인은 애도할 필요가 없고 애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에서 하나 올라서면 그 곳에는 올림픽이 있다. 박정희가 말하길, 한국의 상황에서는 군사가 곧 경제고 경제가 곧 군사라고 했는데, 그 말은 박정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진실에 가까운 말이다. 올림픽은 같은 지배의 다른 두 측면, 경제와 군사를 통해 경쟁하는 국제관계의 일반적 상징으로 부족함이 없다. 올림픽은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찌보면 참담한 문제를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차단해 버리는 세트장이자 쇼의 무대일지도 모른다. 광주의 경험과 기억이 미스유니버스 대회와 올림픽으로 인해 있을 자리를 잃고 쇼의 환희와 환상적인 성취감으로 대체되는 것은 참혹한 상황에서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참혹한 마음에 대한 가장 큰 모욕이자 파괴일 것이다. 그 마음의 파괴 위에서 한국사회는 계속 나아갔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방식의 지속은 거의 모든 곳에서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배는 언제나 양 팔로 이루어지는 듯하다. 한국의 대통령을 열거해 말해보자면 한쪽에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대표되며 이어지는 독재정권이라 일컬어지는 팔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는 김대중으로 표상되는 민주정권이라 일컬어지는 팔이 있다. 그 양 팔이 모아져서 지배의 울타리가 온전히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김대중은 미국의회의 영어연설에서 시장개방과 규제철폐를 약속하는 것이다. OECD와 G20, 수출대국과 아시아의 경제강국 같은 수식어는 아멘으로 화답할 구원자의 이름이 아니라 사람들을 옥죄는 울타리의 이름일 뿐이다. 그 울타리가 울타리 안의 사람들에 의해 견고히 지탱되기도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서글픈 일이다.


Posted by 미국의 바람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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